권력의 방송장악은 의도적 외면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 방통위의 정상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사안이다. 방통위는 정부여당 추천 3인 야당 추천 2인 총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기형적인 2인 체제’를 운영함으로써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 방통위는 존재 의미를 완전히 상실했다. 대통령이 임명한 2명의 상임위원만으로 중대한 결정들이 정권의 뜻대로 이뤄졌다. KBS를 장악했고, YTN을 민영화시켰다. MBC만 남았다.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이사장 해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방통위법은 정치적 다양성을 위원 구성에 반영함으로써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 국민 권익 보호와 공공복리 증진이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며 "위원 2명의 결정은 방통위법이 이루고자 하는 입법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전국언론노조 YTN지부와 우리사주조합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최대 주주 변경 승인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서도 "방통위가 합의제 행정기관에 해당하고 방통위법 13조 1항 내용에 비추어 회의를 요구할 경우 2인 이상의 위원 및 위원장 1인 합계 3인의 재적 위원이 최소한 요구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없지 않아 2인 의결로 행해진 이 사건 처분의 절차적 위법성이 문제 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방통위법 개정안의 핵심은 방통위 회의 개의 요건을 ‘상임위원 4인 이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의사 결정 과정에 합의제의 취지가 작동하게끔 강제하고, 정부여당이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할 경우에는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든 야든 정파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없다면, 그 만큼 방송의 독립성은 보장될 여지가 있고, 지금보다 진일보라고 할 수 있다.
탄핵의 본질 외면한 채 ‘남발’프레임
‘민주당의 탄핵 남발’이라는 주장 또한 구태의연한 수구적 논리다.
탄핵은 선출직 혹은 임명직에 있는 고위공직자가 권력을 남용하거나 직무상 불법행위를 저질렀을 때 그 직위에서 파면할 수 있는 제도이다. 탄핵은 근본적으로 주권자(혹은 그 대리인에 의한)의 정치행위이다. 대의제 하에서는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탄핵을 진행한다. 재적의원 1/2 혹은 2/3(대통령의 경우)의 찬성으로 탄핵안이 통과되면 최종 판단은 헌법재판소가 내린다. 탄핵 자체가 정치행위이므로 ‘정치적 탄핵’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탄핵의 정당성 여부는 오로지 그 행위(탄핵)가 주권자인 국민의 이익에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탄핵은 적법한 절차를 지키면, ‘보장되고’ ‘가능한’ 정치행위의 하나일 뿐이다.
윤석열 정권하에서 방통위원장들이 줄지어 탄핵 대상이 되는 이유는 너무 분명하다. 방통위원장이 ‘방송 장악의 실무책임자’로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탄핵안이 발의된 근본 원인에 대해 일어반구가 없다. 오히려 “취임한 지 100일도 안 된 사람이 구체적 법 위반 사실도 없이 탄핵을 피하기 위해 자진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이동관 위원장을 옹호할 뿐이다.
민심 외면하고 스스로 정파적이 된 사설(邪說)
현재의 정국은 국민이 만든 것이다. ‘정치는 얼핏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국민들이 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지극히 타당하다. 국민은 지난 22대 총선을 통해 윤석열 정권을 가혹하게 심판했다. 만약 이 나라가 내각제였다면 이미 윤석열 정권은 퇴진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제이다 보니 주권자의 심판이 즉각 정치 현실에 반영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에게는 ‘대통령 탄핵’과 ‘개헌’ 가능선에 육박하는 의석수를 안겨주었다. 그 의석수만큼 야당에게 주어진 정치적 책임은 클 수밖에 없다. 대의정치에서 의회 다수당의 입장은 결국 국민들의 요구에 다름아니다. 민주주의에서 소수를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이상이고, 다수가 결정하는 것은 현실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받들지 못하는 정당은 이내 버림받는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조속히 바로잡아야 하고, 민생을 돌봐야 하며, 각종 입법을 통해 제도개혁을 이루어 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은 벌써 2백만에 육박했다. 정치가가 답을 내놓지 못하면 국민은 ‘직접 심판’을 위해 다시 광장으로 나설 것이다.
조선일보가 작금의 법개정과 관련해 민주당의 과거 행태를 백 번 비판해도 옳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이 할 수 있을 때는 아무런 제도적 개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인사들도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내로남불’을 핑계로 현재의 법개정을 정파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대의를 상실한 더 정파적인 태도이다. 여야 모두 잘못된 과거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현재의 정치가 해야 할 일을 가로막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정파적이 된 사설(社說)은 사설(邪說)에 불과하다. 국의 간이 제 입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밥상을 엎으려 들어서는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