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 '지도자', 이재명 '희생자' 프레임 부각
보도 내용을 이재명부터 살펴보면, 중앙지인 ‘조중동’은 이재명 피습 사건을 증오 정치에 매도된 개인의 일탈행위로 축소 보도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방지들은 다른 보도 특징을 보였다. 지방지 중에서 <부산>은 ‘조중동’과 동조화 현상을 보인 반면, <국제> 와 <경남 도민>은 이들 4개사의 보도와는 달랐다. <국제>는 수사당국의 범인 신원 및 당적 미공개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했고, <경남도민>은 이재명 관련 지역차별 논조의 보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경남지역의 응급 의료시설의 취약점을 지적하는 보도 프레임을 썼다. 박근혜 피습 사건 보도를 살펴보면, 중앙지인 ‘조중동’은 첫 지면 보도부터 박근혜는 정권의 무능과 수사당국의 초기 대응 부실로 생명 위협을 느낀 ‘위기’프레임을 가동하면서 친절한 ‘의료진’의 도움으로 상처를 이겨내면서 "나는 괜찮다 … 당이 오버하지 않았으면”하는 발언을 할 정도로 의연한 국가 지도자의 모습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박근혜는 국가의 무능과 잘못된 정책으로 풀려한 보호관찰대상자에게 ‘테러’를 당한 ‘불쌍한 공주님’ 뉴스 프레임 속에서 있었다. 이와 달리, 이재명은 디지털 미디어의 확증 편향 콘텐츠에 매몰된 은둔형 외톨이 홀리건에게 증오의 칼날을 맞아 쓰러진 ‘무기력한 희생자’였다. 또한 병원 관련 프레임도 반대로 작동했다. 박근혜는 이재명과 달리 의료진들에게 ‘모범 환자’라고 칭찬을 받으면서 ‘병상 정치’와 ‘편지 유세’를 하는 ‘국가 지도자’로 보도되는 반면, 이재명은 ‘의식 있고 위급 상황이 아닌’ 데도 서울대 병원으로 간 ‘지역 차별-갈등 유발자’로 이슈 프레밍 됐다. 시각보도의 프레임도 박근혜는 ‘의연함’을 이재명은 ‘무기력함’이었다. 박근혜는 △병상에 누워 있는 사진을 사용하지 않았고, △병원으로 가기위해 차를 타는 모습, △병상에서 앉아서 웃으면서 의료진과 대화하는 사진 등을 사용했다. 이와 달리, 이재명은 △ 하이 앵글 사진의 피습 당해 누워 있는 사진, △ 헬기로 옮겨지는 침상 사진 등을 보도했다. 이 프레임은 박근혜를 테러에 굴하지 않는 ‘살아 움직이는 지도자’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재명은 증오의 칼날을 맞은 ‘수동적인 희생자’ 이미지를 만드는 효과를 냈다.
박근혜 ‘있고’, 이재명 ‘없는’ 뉴스 프레임들
동일한 야당 대표 피격 사건이지만 보도 프레임은 반대였다. 진보 성향 정권인 노무현 정권에서 발생한 박근혜 피습 사건 보도 프레임에는 △ 피의자의 신원 공개 및 여당과의 관계, △ 대통령의 범인과 배후를 밝히라는 특별 지시, △ 피습관련 의문점: 갈수록 커지는 의혹들, △ 경찰과 검찰의 부실 수사 비판, △ 우호적인 의료계 반응, 그리고 △ 피습과 관련된 의료 정보 등의 보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보수 우익 성향의 윤석열 정권하의 이재명 피습 보도에는 이런 내용들이 없었다. 뉴스 속의 이재명은 ‘배제’의 프레임이 작동했다. 이재명 상처에 대한 수사당국의 정확한 언론 브리핑이 없었다. 경찰은 ‘이 대표 목 부위 1cm 열상 (찢어진 상처)로 발표했지만, 민주당의 의료계 영입 인재에 의한 언론 브리핑에서 ‘칼에 찔린’ 사건으로 정정됐다. 또한 박근혜 피격 보도에서 나왔던(범인의 이름, 월별 카드 지출액, 휴대폰 개통시기와 사용료, 여당 의원에 취직 부탁, 범인의 카드깡 내역) 내용들이 수사당국의 비협조로 나오지 못했다. 이 같은 보도 내용이 ‘생략’됨에 따라 이재명의 피습 사건은 발생했지만 내용을 알 수 없는 오리무중 오리무중 사건으로 ‘축소’됐다. 유사하게, 이재명에게만 특권 의식에 젖은 ‘갈등 유발자 야당 지도자 프레임’이 씌워졌다.
◇<조선>, 이재명을 지우다= 대형 사건이 발생할 경우, 첫 보도가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고, 향후 전개될 담론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점에서 박근혜와 이재명 1면 지면 기사 제목을 비교해 보자. 우선 이재명 기사를 살펴보면, ‘혐오 정치 칼날에 쓰러진 야당 대표’(<조선>) , ‘이재명 대표 피습 … 총선이 테러 당했다’(<동아>), ‘이재명 피습 … 총선의 해 열자마자 쇼크’ (<중앙>), ‘이재명 민주 대표 부산서 흉기 피습’(<부산>), ‘부산 온 이재명, 흉기 피습 충격’<국제> 등이다. <경남 도민>는 사고 첫날 관련 기사가 없다. 5개 신문이 공통적으로 야당 대표가 피격을 당했다는 단순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다. 눈에 띄게, <조선> 1면 보도에는 이재명 이름이 없다. 야당 대표가 ‘혐오’의 칼날을 맞은 것이지 습격을 당했다는 내용도 없다. 교묘하게 이재명 피습 사건을 증오 범죄로 일어난 형사 사건으로 축소하고 있다. <중앙>과 <동아>는 이재명이란 이름은 있지만, 피습 사건을 총선과 연결해, 대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의미를 만들고 있다. 유사하게 <부산>과 <국제>는 이재명이란 이름과 부산을 연계해 피습의 의미를 만들고 있다. 박근혜 1면 보도를 분석해 보자. <조선>은 첫 지면 보도 1면에서 ‘보호관찰대상자가 테러 박대표 피습 ... 60바늘 꿰매’란 제목의 톱기사로 배치했다. 피습범의 범죄 경력과 박 대표 피습을 연결해 보도하면서 상처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60바늘도 함께 부제로 잡았다. 이 제목으로만 보면, 박근혜는 보호관찰자에게 조직적으로 공격을 당한 피해자로 묘사된다. 피습범의 범죄 경력을 짐작할 수 있는 제목은 다른 언론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박 대표 피습 … 지방선거 자상’(<동아>), ‘박근혜 테러 충격, 테러는 분열·증오 먹고 자란다’(<중앙>), ‘박 대표 주말 서울 유세장서 피습’(<부산>), ‘박근혜 대표 서울 유세중 피습’(<국제>) 등이다. <경남 도민>는 박근혜 피습 사건을 독립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두 피습 사건의 보도 프레임에서, <조선>은 국가 범죄자에게 야당 대표인 박씨가 칼에 맞아 크게 다쳤다고 짐작할 수 있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이는, <조선>이 야당 대표의 피습 사건에 이름 석 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만들어 내는 ‘의미’는 상이하다. 이재명 피습은 주체가 없는 증오 정치로 인해 야당 대표가 칼을 맞은 것으로 해석되면서 이재명이란 이름이 사라 지지지만, 박근혜 피습는 국가가 방치한 범죄자 때문에 야당 대표가 아닌 ‘박 대표’가 상처를 크게 입은 불행한 사건의 프레임 속에 박근혜 이름이 부각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 <부산>과 <조선>이 의료 갈등 프레임 시동을 걸었다= <부산>은 이재명의 헬기 이송 사건을 선민의식에 젖은 민주당 대표의 지역 차별 프레임으로 전환했다. 같은 날 <조선>도 동일 프레임을 활용했고 <중앙>과 <동아>도 뒤따랐다. 단지 차이는 정보원 출처가 다르다는 점이다. <부산>은 부산대병원 관계자의 “의식 있고 위급한 상황은 아니다” 란 발언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고, <조선>은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장의 발언 “초응급이 아닌데 헬기 타고 이송되는 건 일반인의 경우 불가능 아니겠냐”며 “권역외상센터는 부산대병원이 우리나라 최상위권인데도 이 대표는 (권역외상센터도 없는) 서울대병원으로 갔다”고 이재명의 헬기 이송을 비판했다. 즉, 부산·경남 지역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부산>이 지역주의를 선동하는 ‘갈등 프레임’을 시작했고, 중앙지인 ‘조중동’이 확대 재생산했다. 이 쟁점의 담론은 민주당의 지역 의료 홀대론 - 대학병원 자존심 싸움 - 민주당과 전국 의사 단체 갈등으로 변화 전개됐다. 하지만, <국제>는 ‘이재명 서울 이송은 가족 요청 … 부산대병원 “유감 표명은 사실무근” 기사를 보도했고, <경남 도민>은 지역 의료 차별 프레임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거창·통영권역서 중증외상환자 골든타임 내 이송 어려워’ 기사를 통해 부산·경남 지역의 의료 불균형 개선을 요구하는 보도를 했다.
<참고문헌>
이완수·배재영 (2015). 세월호 사고 뉴스 프레임의 비대칭적 편향성: 언론의 차별적 관점과 해석 방식. 한국언론정보학보, 71, pp. 274- 298.
이희영·김정기 (2016). 질적 메타분석을 통한 뉴스프레임의 유형: 국내 117개 프레임 연구를 대상으로. 한국언론학보, 60(4), pp. 7-38.
Reese, D.S. (2001). Prologue-framing public life: A bridging model for media research. In S. D. Reese, O. H. Gandy, & A. E. Grant (Eds.), Framing public life: Perspectives on media and our understanding of the social world (pp. 7-31). NJ: Erlb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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