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보도는 오세훈 후보 '말 바꾸기' 검증 보도
KBS의 ‘‘내곡지구 개발’ 보도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의 상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과 부산에서 시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진행 중이었던 2021년 3월은 공무원들의 부동산 투기로 국민들의 분노가 전국을 휩쓸고 있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의 부동산 개발 책임 기관인 엘에이치(LH) 임직원의 토지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엘에이치(LH) 직원은 그린벨트 개발과 관련된 정보를 지인과 친·인척들에게 흘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법원 공무원은 법인을 설립해 최대주주로 240억 원을 그린벨트 지역에 투기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청와대 직원은 임야를 밭으로 토지 형질을 변경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오 후보가 서울시장 시절 부인과 처가의 땅이 있는 서울 내곡동 일대 그린벨트 개발을 추진했고, 보상금으로 큰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 후보 측은 개발을 결정한 건 노무현 정부이고, 법이 바뀌면서 형식적 절차만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양 측의 ‘내곡지구’ 개발에 대한 입장은 첨예하게 달랐다. 선거 국면에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순간이 언론의 검증이 필요한 때이다.
이 같은 맥락 속에서, KBS의 서울시장 검증 보도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3.15. ~ 3.25)는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오 후보의 해명 검증 보도다. 쟁점은 ‘내곡지구’ 개발 경위와 개발 결정 책임자가 누구인지였다. 두 번째 시기 (3.26 ~ 4.1)는 오 후보의 측량 현장 동석 여부와 그의 해명 검증 보도다. KBS 취재 결과 오 후보 처가의 측량 행위는 SH가 개발 여부에 대한 외부 용역을 발주하기 이전에 이뤄졌다. 또한 이날 측량 현장에 오 후보가 함께 있었다는 증인들이 등장했다. 검증 보도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이들 검증 보도는 KBS 검증 보도 규범을 충족한 보도들이다. 기사의 정보원들은 공문서(SH 문서, 서울시와 건교부 사이 공문, 지적공사의 측량기록 및 측량 결과도), 전문가(환경부 공무원, 부동산학과 교수들, 시민단체 간부), 3인 이상의 경작인 들과 측량 기사, 그리고 행사에 참석한 인물 사진들이 사실을 증명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기사의 내용 전개는 ‘민주당의 오세훈 셀프 특혜 의혹 - 오세훈의 반박과 해명 - 내곡동 개발 경위와 결정 시기 - 개발로 손해 봤다는 오 후보의 주장 검증 - 오세훈 처가 개발 용역 직전(前) 내곡동 땅 경계 측량 -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오세훈 목격 증인들 등장 - 오세훈 큰 처남 측량 현장이 아닌 대학원 행사에 참석’ 등이다.
‘내곡지구’ 개발, 이명박 서울시가 제안하고 이명박 정부에서 결정
이들 10개의 기사 중 첫 번째 보도(3.15)와 국면 전환이 이뤄진 여섯 번 째 보도(3.26)를 살펴보자. KBS는 3월 15일 <뉴스9>에서 ‘내곡지구 개발 서울시 제안했지만 노무현 정부 지정 안 해’란 제목으로 처음 보도했다. 내용은 민주당의 주장과 오 후보의 해명 검증이었다. 검증 절차는 내곡동 일대 현장 취재와 관련자 증언 그리고 공문서 취재로 이뤄졌다. 그 결과, 민주당의 주장은 대체로 사실로 드러났다. ‘내곡지구’에는 오 후보 아내와 처가 소유의 땅이 있었고, 이 일대가 택지개발 예정 지구로 지정돼 서울도시주택공사(SH)에서 36억 5천만 원을 보상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오 후보의 해명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다. 오 후보가 주장하는 개발 결정 시기는 ‘2006년 3월’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9년 11월’이었다. KBS 취재팀은 ‘개발 경위’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이명박 서울시는 2006년 3월 내곡동 일대 임대주택단지 개발 제안서를 건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서울시 도시 계획과, 서초구청, 그리고 환경부의 반대로 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개발이 결정되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9년 11월에 개발이 최종 결정됐다. 개발 결정 당시 서울시장은 오세훈이었다. 하지만 개발 결정의 최종 결재권자는 오 시장이 아닌 도시개발 국장이었다. 서울시 사무처리 전결 규칙은 개발 예정지구 지정 방침은 시장이 최종 결재권자이지만, 예정지구의 경미한 변경 등은 실국장 전결로 돼 있다. KBS 검증 보도는 3월 26일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이날 보도된 기사의 제목은 ‘오세훈 처가, 2005년 6월 개발용역 직전 내곡동 땅 경계측량’과 ‘복수 경작인,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오세훈 있었다’이다. KBS 취재팀은 오 후보의 처가가 내곡지구 개발을 추진하기 직전에 측량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측량 현장에 선그라스를 쓴 오 후보가 동석했다는 증인들의 발언을 확보해 보도했다. 이날 보도에서 증인들은 오 후보와 ‘생태탕’을 먹었다고 증언 했고, 당시 식당 이 안골식당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KBS는 이 보도에서 처음으로 ‘의혹’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전에 사용하던 ‘내곡지구’란 명칭 대신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땅 의혹’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타사보다 취재력 돋보인 KBS 검증 보도가 불공정 보도라고?
KBS 검증 보도의 탁월성은 타사와의 비교 분석에서도 두드러진다. 보수지인 조선·동아·중앙 등은 내곡지구 관련 기사를 별건으로 취재 보도하지 않고, 오세훈 후보 측의 주장만을 전달했다. 보도 기사 건수도 1~2건에 불과하며, 취재원은 모두 오 캠프 측 인사들이다. 심지어 진보지로 분류되는 한겨레(4건)·경향(1건)도 내곡 지구 검증 보도를 소홀히 했다. 한겨레는 3건의 보도와 1건의 사설 중에서 자체 발굴한 취재기사는 하나도 없다. 유일하게 <경향>만 ‘오세훈 셀프 특혜 의혹’이란 제목으로 발굴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의 정보원은 서울시의회 도시관리위원회 회의록으로, 오 후보가 친환경 주거 단지 언급으로 내곡동 개발 방향이 바뀌었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즉, KBS만 서울시 미래권력 후보자의 말 바꾸기를 지속적으로 검증 보도했다. 기자들의 땀과 고뇌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분석으로 추론컨대, KBS 내곡지구 검증 보도팀이었던 기자의 언론중재위원회 ‘자사 보도’ 조정 신청은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 번째는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에 나온 후보의 발언을 검증 보도한 것이 ‘왜’ 불공정 보도인지를 묻고 있다. 두 번째는 공영방송 기자가 자신들이 정한 언론 규범에 맞춰 취재 발굴한 기사를 쓸 수 없다면, 국민의 방송인 KBS는 어떤 기사를 써야하는가라는 고민이다. 마지막으로, KBS 경영진은 ‘왜’ 오세훈 후보 처가 땅 개발 보도를 불공정 보도로 꼽았는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 추론 질문 중 하나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세훈 후보 대권 프로젝트가 현재 물밑에서 가동 중이고, 출마할 경우 논란이 예상되는 골칫거리 중 하나를 미리 처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의 가설이 적중하지 않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 바비 젤리저 외 3인. (2023). 저널리즘 선언 (신우열·김창욱 옮김). 파주: 오월의 봄
- KBS (2020). KBS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 https://guide.kbs.co.kr/ko/home
- 강준만(2016). 왜 저널리즘이 민주주의를 결정하는가? : 월터 리프먼, 인물과 사상(통권 219호), pp. 45-78.
- 이준웅 (2014). 언론의 고위공직자 검증보도의 전제와 원칙. 관훈저널(통권 132호), pp.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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