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도 3월8일 “종북세력 대거 국회입성 눈앞, 국정원 대공수사 복원 서둘러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종북몰이에 가만히 있을 조선일보가 아니었다. 3일을 관망(?)한 조선일보는 3월11일 “종북세력 국회 진입으로 더욱 시급해진 대공 수사권 복원”이란 제목을 달아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복원을 ‘기정사실화(foregone conclusion)’하는 수법을 동원했다. 대공 수사권 복원을 바라는 국정원 입장에서는 ‘역시 조선일보!’라는 탄성이 나올 만하다.
다음 날인 3월12일 중앙일보는 “반미·반국가 세력의 ‘비례대표 1번’ 철회돼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중앙일보에게 ‘미국’이 우리나라에 성역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묻고 싶다. 중앙일보 사설의 주장은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조차 ‘반미주의자’의 굴레를 씌우는, 위험천만하고 반 헌법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정책’뿐만 아니라 미국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될 수 있어야 민주주의 국가가 된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The First Amendment)는 언론의 자유 뿐만아니라 종교와 사상, 집회의 자유까지 같은 조항에 담고 있다. 왜 그럴까?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전제하지 않는 언론의 자유는 실질적으로 존재하거나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게 리영희 선생의 해석이다. 미국은 이 수정조항을 233년 전인 1791년에 채택했다.
다시 우리 족벌신문들 사설 제목들을 더 훑어보자.
☐ 서울신문: 종북인사 국회 무혈 입성, 이게 국민 뜻인가(3월12일)
☐ 세계일보: 피고인, 친북인사 대거 공천... 이런 비례대표제 왜 필요한가(3월20일)
☐ 서울신문: 친북·반미에 범법자까지...野 요지경 비례대표(3월20일)
☐ 한국경제: 친북·범죄 혐의자에 폭력 전과자까지 진흙탕 된 비례대표(3월20일)
☐ 조선일보: 1%지지 종북정당에 최대 5석 주고 정책까지 연대하는 민주당(3월21일)
☐ 매일경제: 친북세력 국회 입성 도우면서 “전쟁 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이재명(3월25일)
보다 못한(?) 경향신문이 나섰다.
3월27일 경향신문은 1면 기사에서 “급해진 여권, 일제히 ‘색깔론’ 꺼냈다”는 제목으로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인요한 국민의미래 선거대책위원장 등의 발언을 전했고, 같은 날 사설은 <“반국가세력”과 “이념전쟁”, 여권 또 색깔론 회귀하다>는 제목으로 여권의 이념공세를 경계했다.
'빨갱이' 사냥이 반복되는 이유
한겨레신문의 선임기자 성한용의 3월12일자 <성한용 칼럼> 제목처럼 “가짜 보수의 지긋지긋한 빨갱이 사냥”은 왜 선거 때마다 반복될까?
첫째, 우리나라 족벌언론(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매일경제 등)과 재벌언론(한국경제, 문화일보)은 정치적인 지형에서 수구·보수적인 입장이나 태도로로 일관해 왔다. 특히 중요한 선거 국면에서는 특정 정당이나 대선 후보의 선거 캠프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면서도, 정작 사설이나 사고(社告) 등을 통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이것이 미국의 유력 언론(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과 극단적으로 다른 점이다. 미국의 주요 언론사는 사설을 통해 특정 정당과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러나 뉴스 보도에서는 사실(fact)에 근거해 균형과 형평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둘째, 족벌·재벌언론의 이런 지극히 모순적인 정치적 태도는 족벌언론과 재벌언론을 왕국처럼 대대손손 소유 혹은 지배하고 있는 대주주와 가족·경영진의 입장이나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족벌·재벌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watchdog)이나 제4부(The Fourth Estate)가 아니라, 권력과 재벌의 애완견이나 마름에 불과하다.
워싱턴포스트의 오너이자 발행인이었던 그레이햄(Katharine Graham) 회장은 “좋은 신문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좋은 소유주를 갖는 것”이라고 설파했고, 이런 원칙을 워트게이트 사건 등의 보도에서 정부 위협에 굴하지 않고 몸소 실천했다.
셋째, 집권당인 국민의힘 세력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족벌·재벌언론 입장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실패하고 권력이 야당으로 넘어가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야 할 현실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족벌·재벌언론과 사주들, 그리고 기자를 포함한 구성원들은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층으로 종부세와 법인세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윤석열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 정치적 경험이 거의 없는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는 취임 초부터 조선일보를 비롯한 족벌·재벌언론의 주문대로 국정을 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언론이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물가 인상과 내수침체를 동반한 경제 악화, 서민들의 피폐한 삶, 부자 감세와 법인세 인하 등에 따른 재정수지 악화, 남북한 긴장 고조와 전쟁 가능성 등으로 민심이 이반한데 따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종북몰이는 이들 언론이 자신들의 책임을 은폐하고 국면 전환을 꾀할 수 있는 유일한 소재인지 모른다. 앞뒤를 재거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유권자들과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더 이상 시대착오적이고 어설픈 종북몰이 사설에 놀아날 유권자는 많지 않다. 족벌언론이 4·10 총선 결과에 벌써부터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끝>